며칠 전 포털 뉴스를 훑어보다가 손이 멈췄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용의자 X의 헌신' 하나로도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그 기사를 다시 읽었다.
평소에 책 한 권 끝까지 읽는 게 쉽지 않다.
초4 아들, 초2 딸 재우고 나면 이미 밤 11시가 훌쩍 넘어 있어서다.
그래도 그날 밤엔 이북 앱을 열어서 그 작가 책이 뭐가 있나 한참 뒤적였다.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일본 출판사 고단샤가 7월 2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부고를 알렸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가 지난 23일 새벽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향년 68세, 장례는 유가족만 참석한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고 한다.
1958년생인 그는 1985년 장편소설 '방과 후'로 데뷔했다.
이후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비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가면산장 살인사건', '녹나무의 파수꾼' 같은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자리잡았다.
누적 판매 부수가 1억 부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고 '와, 그 정도였구나' 싶었다.
사실 숫자로 보니까 그제야 실감이 났다.
마지막 신작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
공교롭게도 부고 소식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신간이 나왔다.
'투명한 나선'이라는 작품인데, 갈릴레오 시리즈 20주년을 맞아 나온 열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주인공 유카와 마나부가 숨겨온 시간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내용이라, 시리즈 팬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편이다.
교보문고가 8월 12일부터 18일까지 집계한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에서 이 책이 3위에 올랐다.
영업점과 인터넷 서점, 전자책 판매를 다 합산한 순위라고 하니 신뢰도는 있는 셈이다.
'작가가 떠난 직후에 순위권에 올랐다는 게 좀 먹먹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Pexels (무료 라이선스)
일본에서 한국어책을 읽는다는 것
일본에 살면서 한국 신간을 챙겨 읽으려면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종이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면 며칠씩 걸리니까, 급할 땐 전자책 앱부터 켠다.
이번에도 종이책은 나중에 배송으로 받기로 하고, 일단 전자책으로 먼저 목차부터 훑어봤다.
사실 시리즈 최신작을 갑자기 읽으면 앞뒤 맥락이 헷갈릴까 봐 걱정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갈릴레오 시리즈는 국내에 이미 '용의자 X의 헌신', '침묵의 퍼레이드' 같은 전작들이 여러 권 나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용의자 X의 헌신'은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이번엔 큰 부담 없이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이 작가 작품을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1. 데뷔작: '방과 후' (1985년)
2. 대표 시리즈: 갈릴레오 시리즈(유카와 마나부), 가가 형사 시리즈
3. 대표 단행본: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비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4. 누적 판매 부수: 약 1억 부
5. 마지막 작품: '투명한 나선'(갈릴레오 시리즈 20주년, 10번째 이야기)
이렇게 쭉 적어놓고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이 작가 책을 꽤 읽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1위는 따로 있었다
같은 주간 베스트셀러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뜻밖에도 2천 년 전 철학자의 책이었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라는 책이다.
'바쁘게 살았는데 산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2천 년 전의 처방전'이라는 소개 문구가 마음에 콕 박혔다.
'이거 완전 내 얘기 아닌가' 싶어서 잠깐 멈칫했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애들 챙기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2천 년 전 사람이 쓴 글이 지금 나한테 와닿는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씁쓸했다.
같은 주간 베스트셀러 4위에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도 올라 있었다.
'투명한 나선'이 3위, '싯다르타'가 4위로 바로 이어져 있는 걸 보니, 요즘 독자들이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책들에 마음을 많이 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이든 고전이든, 결국 사람들이 찾는 이야기의 결이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사진: Pexels (무료 라이선스)
결국 넷플릭스로 갈릴레오 시리즈까지 정주행
책을 읽다 보니 원작 드라마가 궁금해져서 넷플릭스를 켰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넷플릭스를 비롯해 왓챠, 웨이브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날 밤엔 책 대신 1화만 잠깐 보고 자야겠다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2화까지 넘어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좀 후회했다.
'어제 그냥 자라고, 왜 또 새벽까지 봤어' 하고 스스로 타박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야기에 푹 빠졌던 밤이라 나쁘지 않았다.
거장의 마지막 작품 소식에서 시작해서 결국 예전 시리즈까지 다시 챙겨보게 됐다.
혹시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댓글로 추천 좀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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