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기/전자 2

 

4번째 투고글. 전편에서 소개한 3사 이외의 주요 전기/전자 메이커에 대해 써보겠다. 종합전기메이커들은 중(重)전기 분야에서 애프터서비스(보증기간 만료후의 소모품, 부품교체, 정기점검, 고장수리 등)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가전이나 디지털 디바이스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경우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랜드를 쫓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또한 중전기 분야는 전기사업법을 포함한 일본 특유의 규제, 규격등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일본국내시장 진입에 높은 장벽을 가지고 있는 반면, 가전이나 IT기기, 디지털기기등은 글로벌 기업들과의 무한경쟁의 무한반복 상황에 처해있다.

엔고, 삼성의 대두와 함께 하락세를 걷기시작한 일본의 전자기업들 중에서 종합전기 3사는 비교적 빠르게 안정세를 찾았지만 (도시바는 회계조작으로 밝혀졌으나..) 파나소닉과 소니는 안정을 찾기까지 매우 오랜시간동안 큰 적자를 감당해야했다. 샤프처럼 외국기업에 흡수된 사례도 있다.

일본의 전기/전자기업들의 경우 각각의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고 이들 조합들이 큰 연합을 이루어서 사측에 대항하여 교섭력을 높이고 있다. 매년 신년도가 되면  춘투(春闘, 슌토-)라고 해서 노조와 사측의 임금교섭을 한다. 종합전기 3사(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및 파나소닉, 후지츠, NEC노조가 주도하여 임금인상안을 내고 각각의 노조가 사측과 교섭을 하는데 (도시바나 샤프처럼) 업적이 좋지않은 회사의 노조는 자진해서 교섭을 사퇴한다.




오늘은 한국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잘 알려진 일본의 전기/전자 대기업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 물론 오늘 소개하는 기업들도 모두 동경증시1부상장 기업들이다.

 

1. 파나소닉 (Panasonic, パンソニック, 파나소닉쿠)  

매출 7조3천억엔   경상이익 2천7백억엔  (2016년도, 연결)  

히타치에 이어 일본2위 규모의 전기메이커.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幸之助)가 마쓰시타 전기기구제작소(松下電気器具製作所)를 설립하여 자전거에 부착하는 전구를 히트시켜 성장하였다. 후에 마쓰시타 전기산업(松下電器産業)으로 사명을 변경였다. 1950년대에 수출용 스피커 브랜드로 파나소닉이라는 브랜드가 처음 등장했고, 파나소닉이 동사의 모든 제품, 모든 지역에 대해 통합브랜드로 성장한다.  2008년부터 사명을 파나소닉으로 변경했다. 창업자 마쓰시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며 그에 관한 많은 연구과 책들이 발간되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생전에 사비 70억을 들여 설립한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経塾)은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기관이다. 설립취지는 나라를 이끌 리더를 양상하는 것이다. 설립취지대로 1기생 출신인 노다요시히코(野田佳彦)가 총리가 되는 성과도 있었다. (결국 아베에게 정권을 빼았겼지만..) 현재까지 50명이상의 국회의원 및 수 많은 장차관급 내각관료들을 배출해냈다.



파나소닉은 J리그 감바오사카의 메인스폰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아남그룹과 함께 아남 내셔날을 회사를 설립해 TV등을 판매하였다. (모델이름이 화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TV시장이 LCD로 전환하던 시기에 끝끝내 PDP방식을 고집하다가 파나소닉의 TV사업은 폭망했다.

기업의 경쟁력 약화에 엔고라는 악재가 더해져 2011년도와 2012년도 2기연속으로 각각7000억엔이상의 천문학적인 순손실을 냈다. 2년간 1조5천억엔 이상..(당시 환율로 약 20조원)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엔 마쓰시타은행으로 불릴만큼 자금력이 풍부했던 마쓰시타 였기에 도산하지 않고 버텼지, 여타 회사가 20조원의 손실을 냈으면 바로 도산이다.

여담이지만, 시마과장으로 대표되는 인기만화 시리즈 시마 코사쿠(島耕作)의 주인공 시마가 과장 부장 이사 사장 회장까지 성장하는 무대가 되는 하츠시바전산의 실제모델이 되는 회사도 파나소닉이다. 만화가 시로카네 켄시(弘兼 憲史)는 실제로 마쓰시타 전기산업에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이 만화는 현실세계의 파나소닉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는데 시마가 사장이 되고나서 최악의 적자가 나는 바람에 시마는 사장직을 사퇴하게 된다.

최근 4년간은 2000억엔 전후의 경상이익과 1000억 중후반의 순이익을 확보하는등 매우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작가가 사장시마를 조금만 늦게 연재했더라면 시마는 영웅적인 사장으로 묘사되었을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움직임의 뒤에는 B to C에서 B to B로의 급속한 전환이있었다. 전환은 이미 상당히 진척되어 가전제품 매출은 전체의 30%미만이다. 가전을 누르고 매출에 가장 공헌하고 있는 분야는 오토모티브 & 인더스트리얼 시스템 세그먼트이다. 이분야에는 에너지저장용 대형 배터리, 자동차용 배터리, 자동차 전장제품, 공장자동화 설비 등이 포함된다.

파나소닉의 슬로건은 ideas for life.

 

2. 소니  (Sony, ソニー, 소니-)

매출 7조6천억엔   경상이익 2천5백억엔  (2016년도, 연결)

1940년대에 도쿄통신공업(東京通信工業)이란 이름으로 창업하여 1950년대에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미국수출용 브랜드였던 소니로 개명하였다. 소니는 소리를 뜻하는 Sonic에 라틴어 Son (us), 아가야~하고 친근하게 아이를 부르는 표현인 Sonny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한다. 한국사람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일본전가제품 메이커가 아닐까 싶다.

전설적인 성공작 워크맨이 세계를 석권했을때, 소니는 현재의 애플에 위치에 있었다. 당시 스티브잡스도 소니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것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유니폼이 직원들을 단합하게 만든다는 소니의 방식을 애플에도 적용하고자 했으나 직원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러나 잡스는 자신만의 유니폼을 입고자 소니의 유니폼 디자이너로 부터 그가 디자인한 검은 터틀넥을 수백장 받아서 항상 같은 옷을 입기시작했다고 한다.

소니제품은 내구성이 약하다는 평판이 있다. 보증기간이 끝나면 바로 고장난다고 하여 소니타이머 라는 비꼼을 받기도 한다. 소니가 참신한 아이디어로 제품을 발매하면 파나소닉이 소폭 개선하여 발매하는 패턴이 많았다. 성능은 소니, 내구성은 파나소닉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각각 동일본과 서일본은 대표하는 전자 대기업으로 일본 국내에서는 파나소닉과 오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경쟁하는 분야가 심하게 겹치지 않는다. 삼성과의 경쟁구도에서 파나소닉과의 경쟁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부분도 있다.

소니그룹은 9개세그먼트 + 알파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매출규모가 가장 큰 것이 게임부문이고 두 번째로 큰것이 금융부문이다. 소니를 가전 메이커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의외의 면모일것이다. TV나 카메라 등에 주력하던 시기에는 큰 적자를 내고 있었고 그나마 견실한 부문은 방송장비 오디오 그리고 게임 부문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는 게임부문이 소니전체를 이끌 정도로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보다 더욱 의외인 부분이 금융이다. 매출은 넘버2지만 이익은 넘버1이다. 소니생명보험(ソニー生命保険) 소니손해보험 (ソニー損害保険) 소니은행 (ソニー銀行) 등의 자회사가 이쪽 세그먼트에 속한다. 소니의 극심한 불황기에도 금융부문만은 안정적인 이익으로 그룹을 지탱해왔다. 소니는 메이커가 아니라 금융회사다 라고 주장하는 책이 발간될 정도였다. 최근 수년간의 이익구조를 관찰하면 금융회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2017년도의 전망도 게임과 금융이 매출/이익 양면에서 소니를 이끄는 쌍두마차가 될 거라는 전망이다. 반도체와 컨텐츠(영화, 음악) 부문의 부진을 해소하여 영업이익을 5000억엔(연결) 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회복하고 있는듯하다.

캐치프레이즈는 Be moved.


3. 후지쯔(Fujitsu, 富士通, 후지츠-)

매출 4조5천억엔  경상이익 1천3백억엔  (2016년도 연결)

한국인에겐 노트북 등의 이미지가 있는 기업. 컨슈머 제품은 대부분 접은 상대라 많은 한국인들이 이미 폭망한 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시는 바 대로 매출액 4조엔 넘는 거대기업으로 생존해있다. (LG전자에 필적하는 규모?)  심지어 취업률이 매우 높은 일본에서도 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 상위권에 있는 기업이다.

1920년대에 후루카와전기공업(古河電気工業)이 독일의 지멘스와 조인트벤쳐로 후지전기제조(富士電機製造, 현재는 후지전기)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일본에서 발전기나 모터의 생산을 하게된다. 후=후루카와의 후. 지=지멘스의 지 에서 각각 따왔다. 후지전기제조의 통신부문이 분사하여 후지통신기제조(富士通信機製造)가 되었고 현재의 후지쯔(富士通, 통=을 일본어로는 츠-라고 읽는다.)  후지전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다.

2011년에 동사가 개발한 슈퍼컴퓨터 케이(京)가 세계1위의 연산능력을 인정받으며 주목 받았다. 지금은 순위가 5위권으로 밀려있다. 연산능력이란게 컴퓨터를 더 많이 연결하면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크게 의미가 있을거 같지는 않다. 다만 케이는 빅데이터 해석능력에서 여전히 수위를 지키고 있어서 후지츠의 높은 기술력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후지쯔 사업내용의 큰그림을 보면 하드웨어 부문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 PC도 접었고 핸드폰도 나름 열심히 개발해 왔지만 최근에 사업종료를 발표했다. SI쪽이 강하다. IT서비스 부문 매출에서는 최근 수년간 라이벌인 NEC, 히타치를 누르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5위권이다. (물론 1위는 IBM)  매출의 60%이상이 일본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본국내에서는 민관 불문하고 두터운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특히 관공서 상대의 IT서비스는 부동의 1위이다. 전력회사등 공공서비스 부문에도 강점을 보인다.

캐치프레이즈는Shaping tomorrow with you


 

4. NEC (NEC, 日本電気, 닛폰뎅키 또는 에누이-시-)  

매출 2조6천억엔  경상 6백8십억엔  (2016년, 연결)

일본내에서 정식상호명은 한자로 일본전기(日本電気)주식회사로 되어 있지만 요즘은 일본사람들도 그냥 NEC(에누이-시-)라고 부른다. NEC는 Nippon Electric Company의 약자이다. 한자도 영문도 큰 고민없이 지은 이름의 느낌이 든다.



컨슈머 마켓에서는 핸드폰, PC, 모바일 루터 등을 판매하고 있으나 크게 존재감은 없다. 대부분 매출은 법인이나 관공서, 지자체를 대상으로 올리고 있다. 특히 공공시설쪽에 강한 이미지가 있다.

초기 PC시장에서 세계적인 입지를 지녔으나 예전만 못하다. 일본의 업무용 PC시장에서는 여전히 큰 존재감이 있다. 나도 회사의 업무용 PC는 NEC를 쓰고 있다. NEC 외에도 일본에서 업무용 PC로 널리 쓰이는 브랜드는 후지쯔, 도시바, 파나소닉등이있다.  

또한 NEC는 슈퍼컴퓨터, 서버 등에서도 일본의 탑메이커군에 속한다. 일본의 첫 인공위성 제조 및 운용에 성공한것으로도 알려져있다. 형상인식, 음성인식, 센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등 연구개발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름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스미토모그룹에 속한다. 스미토모 그룹내에서는 스미토모전기공업 다음으로 큰 제조업체이다. 스미토모전기공업은 자동차 부품기업 소개때나 비철금속 기업 소개글에 한 번 써볼까 생각중이다.

일본의 종합상사에서 사업범위의 넓음을 표현하는 문구로 종종 “○○에서 △△까지“ 를 사용하다. 이를테면, “성냥에서 발전소까지““페트병에서 로켓까지“ 처럼.   NEC의 경우“해저에서 우주까지“ 를 표방하며 IT기술을 구사하여 폭넓게 인프라 구축에 종사하고 있다.

컨슈머 디바이스보다는 기반시스템, 인프라, 시큐리티 관련 제품이 많아서 오늘 소개된 다른 기업들보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낮을 지도 모르겠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의외로 많은 곳에서 NEC제품을 볼 수 있다. 공항의 지문인식 시스템,  점포의 POS시스템 등.

슬로건은Orchestrating a brighter world 라고 한다.

 

5. 샤프(Sharp, シャープ, 샤-푸)  

매출 2조엔  경상 25억엔   (2016년도, 연결)

우리가 흔히 쓰는 필기구인 샤프를 개발한 회사이다.  창업자인 하야카와 토쿠지(早川徳次)가 개발한 메카니컬 펜슬의 상표명이Ever-Ready Sharp Pencil 이었고 미국, 유럽등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전기기구 메이커로써 여타의 대기업들에 밀려서 빛을 못 보았으나 전자렌지, 전자계산기 등에서 조금씩 성공을 거둔다. 전자렌지를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발매하기도 했고 우리가 지금 흔히 쓰는 턴테이블 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전자렌지를 발명한 것도 샤프다. 또한 조리완료를 알리는 땡! 소리를 처음으로 삽입한 것도 샤프인데 일본에서는 전자렌지로 데우다를 줄여서 ‘찡’하다 (チンする。찡수루.) 라고 표현한다. 태양전지도 오랫동안 투자를 해왔는데 한화큐셀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샤프를 중견전자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은 반도체 생산의 과감한 투자결정이었고 액정TV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샤프가 처음으로 액정표시장치에 눈을 돌린계기는 카시오와의 치열한 계산기 판매 경쟁중에 차별화를 위해 액정표시장치를 삽입한 것이었다.

브라운관의 시대는 가고 LCD가 대세가 될 것을 정확하게 읽고 빠르게 사업전환 한 것이 적중한 했고 한동안 액정=샤프라는 이미지가 생겼었다.  LCD시대를 활짝 열어재킨 주인공 샤프. 이 거대한 성공에 힘입어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트드의 메인 스폰서로써 유니폼에 샤프이름을 새겨넣었었는데 이는 시민구단인 맨유 최초의 일 인것으로 알고있다. 기간적으로도 샤프는 맨유의 최장기간 스폰서였다. 폭망해서 홍하이에 흡수된 지금 생각해보면 가히 샤프의 맨유시절이라 부를만 하다.

삼성과 LG와 비교해 샤프의 LCD가 가지는 기술적 우위가 거의 사라지고 슈퍼 엔고현상으로 샤프는 큰 타격을 입고 다시 일어서질 못했다. 결국 홍하이에 60%이상의 지분을 넘기고 외국계회사가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원을 해고하지 않는다던 샤프였지만 이번의 위기는 무사히 못넘어가고 많은 사원들이 옷을 벗어야했다. 그나마 오랜적자를 청산하고 적으나마 흑자를 기록한걸 위안삼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샤프의 TV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계산기나 전자사전 등으로 친숙한 브랜드이다.  


이상, 주요 전자 전기 회사를 알아보았다. 한국에선 일본 전기회사들이 다 죽어가는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뼈를깎는 시기를 견디며 더욱 강한 체질을 가지게 되었다. (샤프와 도시바는 제외...)

언젠가 엔저로 일본 전기회사들의 수출에 날개가 달릴때, 우리기업들도 반격을 버틸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가 필요 할 것 같다.


*개인의 소견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