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신랑 투고...)


피렌체를 간 김에 피렌체에서 반나절~반일 관광코스로 인기있는 피사를 다녀왔다. 피렌체는 피렌체로 묶어서 글을 쓴 바람에 글 순서가 좀 꼬였는데, 피사를 방문한 시점은 피렌체 이틀째의 아침이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피사 센트럴 역까지는 약 1시간정도가 소요된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피사로 가는 열차는 20여분 간격으로 있기때문에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피렌체에서 버스를 타면 2시간정도 걸린다.


피사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의 목적은 피사의 사탑(Torre di Pisa)을 보는것이다. 사탑이 있는 광장까지 버스도 다니고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므로 걸으면서 풍경감상을 하는 것도 좋다. 보통 걸음걸이로 30분도 안걸린다.



역을 등지고 한 블럭만 전진하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광장 (Piazza Vittorio Emanuele II)이 나온다.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 있다.



시원하게 뻗은 길과 멋진 건물들.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라 한산하기 그지없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메디치가문의 문장이 곳곳에 눈에 띈다. 피사공화국은 한 때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외 식민지까지 가지고 있던 강력한 세력이었으나 제노바와의 해전에서 대패하고 국운이 기울기 시작해 결국 밀라노 공국의 보호령으로 전락. 결국 메디치가가 군주로 군림하던 피렌체에 매각되기에 이르고, 현재까지도 토스카나 지방의 소도시로 남아있다.




아르노강은 피렌체와 피사 관통하여 티레니아 해로 유입된다. 아르노강을 끼고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들이 인상적이다.



가리발디 광장(Piazza Garibaldi).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는 이탈리아의 혁명가로 시칠리아, 나폴리등을 점령하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바침으로서 이탈리아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이탈리아도 우리나라 처럼 집앞 도로변에 자동차를 주차하는 듯 하다. 일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매달 20만원에 달하는 주차비를 지불하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부러운 일이다.





카발리에리 광장(Piazza dei Cavalieri), 기사의 광장이란 뜻이다. 중세 피사의 정치 중심지였으며 기사단의 본거지가 있기도 했다. 이곳에는 아사(餓死)의탑 이란것이 있다. 13세기 피사의 폭군이던 우골리노 공작이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그의 아들들, 손자들과 함께 탑에 갇혀서 굶어 죽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배고픔을 못 견딘 우골리노가 자손들의 육신을 먹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우골리노는 며칠 못 버디고 이 탑에서 사망하여 아사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실제사건을 단테는 '신곡'지옥편의 모티브로 사용했고 후에 로댕은 '우골리노와 그의 자식들'이라는 조각을 남긴다. 

아사의 탑은 사진상 조제의 오른쪽 위에 있는 시계건물과 합쳐지며 변형되어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기사의 광장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가면 드디어 피사의 사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피사의 사탑은 상상했던 것 보다도 더 기울어져있었다.



기적의 광장( Piazza dei Miracoli 또는Campo dei Miracoli)의 전경. 정식 명칭은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이다. 이곳에 피사의 사탑과 피사 대성당, 세례당 그리고 납골당이 모여있다. 광장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피사공화국은 전성기에 지중해의 주도권을 쥐고 외국과 무역을 하며 상당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특히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왕국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린 피사는 승전기념으로 종교건물을 세우게 되는데 피사의 사탑은 그러한 과정속에 탄생한 것이다.



사실 피사의 사탑은 피사 대성당의 종탑으로 부속건물에 지나지 않는데 부실공사의 여파로 기울어진 건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케이스이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탑을 보기위해서 오고, 그 중 일부의 사람들이 겸사겸사 성당을 구경하는 상태이니 심각한 주객전도 상태라 할 수 있겠다.




50미터를 훌쩍넘는 탑을 지으면서 땅을3미터만 팠기때문에 기초부분이 탑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기울게 된것. 기울기를 보완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에도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원래 계획보다 낮은 높이에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건축이 끝난뒤에도 오랜세월에 걸쳐 서서히 쓰러짐을 계속하던 탑은 결국 1990년경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게되고 2001년들어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추가 동시에 지면에 도착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낙하 실험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이러한 공개실험을 했다는 기록도 없거니와 장소가 피사의 사탑이라는 기록도 없기 때문에 갈릴레이의 전기작기가 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생각되어진다.




대성당의 정면. 수많은 기둥과 아치들이 화려함을 더해준다. 1000년전에 어떻게 이런것을 만들수 있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붉은 지붕과 둥근구조가 인상적인 세례당.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작은 기둥들과 아치들이 눈에 띈다. 



사탑을 오르기위해서는 입장권을 구매해야한다. 사탑은 시간별로 허용입장인원수에 제한이 있으므로 미리 예약을 하면 좋다. 홈페이지에서 예약가능한데 피사의 사탑의 경우 장애인 외에는 할인이 없고 현재 홈페이지상(www.opapisa.it )의 요금은 18유로다. 요금도 만만치않고 평판에 의하면 올라가도 별거없다는 의견이 많아서 과감하게 입장은 포기했다.



피사 센트럴역에서 걸어서 피사의 사탑을 보고 다시 피사 센트럴역으로 돌아가는데는 총2~3시간정도. 역근처에서 간식을 먹고 피사방문을 마무리 했다. 우리는 아침일찍 움직인 덕분에 점심은 피렌체에서 먹을 수 있었다. 2주도 안되는 일정으로 이탈리아를 방문한 우리부부의 경우 피사에 투자한 반나절만큼 피렌체의 구경거리를 놓친셈이 되었지만 피사의 사탑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아쉬웠을것이다. 못다한 피렌체 구경은 언젠가 다시 와서 하기로 마음먹고 다음 목적지인 시에나를 향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방문시점은 2016년 4월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