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신랑 투고...)


 시에나에서 극적으로 버스를 놓치지않고 탄 덕분에 계획대로 아침일찍 로마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우선 버스 터미널이 있는 테르미니(Termini)역 근처에 예약해둔 숙소의 양해를 얻어 체크인전에 우선 짐을 맡겨놓은 뒤 바티칸으로 향했다. 이번 로마방문에서는 바티칸만 보고 로마의 나머지 부분은 나폴리를 다녀와서 구경하기로 했다. 테르미니에서 바티칸으로는 메트로를 이용해서 갔다. 메트로 A라인 Ottaviano역에서 바티칸 출구로 나가서 Via Ottaviano를 따라서 좀 걸으면 나오는 리소르지멘토 광장(Piazza Risorgimento) 건너편 높은 담장이 로마와 바티칸 시국의 경계이다. 


 바티칸의 관람코스는 바티칸박물관 (+시스티나예배당), 성베드로성당(+광장) 정도로 크게 나눌 수 있겠다. 이번화에는 전자에 대해서만 다루고, 성베드로성당과 광장은 다음에 써보겠다. 박물관을 먼저 관람하는 경우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된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광장을 보러 가는 경우 Via Ottaviano를 따라 직진하자.)

 초미니 국가인 바티칸 시국은 면적이0.44㎢로 18홀짜리 골프장보다도 작고 로마시에 둘러싸여있는 장소지만 일단 독립된 국가이다. 소지품검사가 있으므로 날카로운 물건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물건은 소지하지 말 것. 참고로, 이탈리아와 달리 바티칸시국은 EU멤버가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 유로화가 통용된다.


・바티칸박물관or 바티칸미술관 (Musei Vaticani) 

교황 율리우스2세(Julius Ⅱ)에 의해 16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박물관이 소유한 7만여개의 유물과 작품들 중 2만개정도가 전시되어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통칭 세계3대 박물관 중 하나로도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정상급 박물관임에는 틀림이 없다.

바티칸 박물관은 연간600만명이상이 방문하는 곳으로 시즌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라면 티켓은 인터넷으로 꼭 예매해서 시간낭비를 최소화하자. 아무런 준비없이 현장구매를 하려면 2시간이상의 기다림을 각오해야 할 것 이다.



미술관 정문 위쪽에 있는 대리석상. 왼쪽이 미켈란젤로, 오른쪽이 라파엘로다.



 입구를 통과하면1932년에 교황 비오11세(Pius XI)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주세페 모모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뒷편에 미켈란젤로의 돔이 보인다.




 나선형 계단을 통해 바깥으로 나오면 솔방울정원(Cortile della Pigna)이 나온다.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솔방울조각은 원래 판테온 부근의 로마 분수대에 있던 것을 가져온 것이고, 공작새 한쌍의 조각은 하드리아누스 황제(Publius Aelius Trajanus Hadrianus) 의 무덤을 장식을 모방한 것이다.

 솔방울은 공기를 정화하는 작용을 한다. 교황청을 방문하는 이들이 솔방울 앞에서 자신을 정화시키라는 의미에서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1960년 로마 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지구 속의 지구’(Sphere Within Sphere)는 1990년에 이곳으로 옮겨져 많은 사람들의 포토존 노릇을 하고 있다. 오염과 전쟁으로 멸망해가는 지구를 표현했다고 한다.



다음은 벨베데레정원으로 가보자. 이곳은 여러 전시관을 잇는 허브역할을 하고 있다. 정원의 하이라이트는 피오클레멘티노박물관(Museo Pio Clementino)이다. 이 박물관의 전시품마련과 완공에 관여된 클레멘스14세(Clement XIV)와 비오6세 교황(Pius VI)의 이름을 딴것이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작품인 ‘라오콘 군상’. 라오콘은 그리스군의 목마를 트로이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던 트로이의 사제인데 이에 분노한 포세이돈이 바다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꽁꽁 감아 죽이는 모습이 조각에 표현되어 있다. 라오콘 군상에 표현된 근육표현과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은 후대 조각가들의 귀감이 된다.

 라오콘 군상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조각이 바티칸 박물관 건립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1506년 라오콘 군상이 로마의 한 포도밭에서 발견되자 교황이 이를 구입했다. 또 이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관건립을 지시하여 탄생한것이 바로 바티칸 박물관인 것이다. 당시 발굴 현장에 파견된 미켈란젤로는 라오콘군상을 두고 ‘예술의 기적’이라고 했으며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인 베드로성당의 ‘피에타’도 라오콘에서 영감을 얻은것으로 알려져있다.



안토니오 카노바 작품,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옷자락, 메두사의 머리카락 표현이 섬세하다.



 ‘원형의 방(Sala Rotonda)’에 있는 이 거대한 원형 대리석은 로마의 분수대였다가 네로 황제의 욕조로 쓰였다고 한다.



사진: 구글 이미지 검색


 ‘뮤즈 여신들의 전시실(Sala delle Muse)’에는 학예, 음악, 시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아홉 여신의 상들이 전시돼 있다. 머리와 팔, 종아리가 없는 흉상으로 유명한 ‘벨베데레의 토르소’가 가운데에 놓여 있다. 몸통과 허벅지의 근육만 봐도 강렬한 남성미가 전해온다.

 ‘뮤즈 여신들의 전시실(Sala delle Muse)’에는 학예, 음악, 시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아홉 여신의 상들이 전시돼 있다.



 머리와 팔, 종아리가 없는 흉상으로 유명한 ‘벨베데레의 토르소’가 가운데에 놓여 있다. 몸통과 허벅지의 근육만 봐도 강렬한 남성미가 전해온다. 이 작품은 트로이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그리스의 아이아스 장군이라는 설과 헤라클레스의 조각상이라고 추정하는 설이 공존한다. 이 작품을 좋아했던 미켈란젤로는 작품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자 ‘이것만으로도 완벽한 인체의 표현’이라 극찬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동물들의 전시실(Sala degli Animali)’은 여러 시대의 개, 멧돼지, 황소 등 동물 모형 대리석상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출처: 바티칸 박물관 홈페이지


‘십자가의 방(Sala a Croce Greca)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세인트 헬레나(Saint Helen)의 관이 전시돼 있다. 바닥의 모자이크 장식은 대리석이 아니라 유리에 무기물을 넣어 색을 입힌 것이다.



 이곳은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 Le Galleria della Mappe)’. 벽면에 세계 각국의 그림지도들이 걸려있다. 천장엔 무수히 많은 그림들이 박혀?있는데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명화라고 할 만한 작품들이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 다음은 바티칸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라파엘로의 방(Stanza di Raffaello)’이다. 라파엘로의 방 안에는 다시 4개의 방이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조성된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 이 방의 프레스코화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가 남긴 명화 중의 명화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중 상당수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 불명확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한다. 또한 이 그림속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조로아스터, 알렉산더 대왕 등 당대의 유명 학자, 철학자, 정치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는데 사실 이들의 생존시기와 활동지역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실제 역사의 한 씬을 그린것은 아니고 허구의 상상화다.

 그림 가운데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박물관의 티켓에도 새겨져있다. 그림의 오른쪽 구석에는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을 새겨넣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플라톤의 얼굴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을,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에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사용한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대작에 그러한 재미있는 요소를 심다니.. 참으로 대담한 시도이다.


 서명의 방 다음으로 엘리오도르의 방(Stanza di Eliodoro), 보르고의 화재의 방(Stanza dell’incendio del Borgo), 콘스탄티누스의 방(Sala di Costantino)이 조성됐다. 라파엘로는 10년 이상 이곳의 작업에 매달렸고 결국 마지막 방을 작업하던 1520년에 고작 37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를 이렇게 혹사시키면서까지 만들어낸 라파엘로의 방 시리즈는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보물이지만 그 댓가로 그의 활동이 여기서 멈추게 된것은 당대의 큰 손실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방문하는곳은 시스티나예배당(Cappella Sistina)이다. 이곳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가 진행되는 장소로 유명하다. 1508년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명을 받고 이곳의 천장화를 그리는데 바로 그 유명한 ‘천지창조’다. 창세기의 9장면의 그림인데 그 중에서도 아담의 창조가 가장 유명하다.



 제단 위 한쪽 벽면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200평정도의 방에 400명에 가까운 인물을 그린 초 대작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의 모습이 대비된다.


 라파엘로 처럼 요절하지는 않았지만 미켈렌젤로 역시 이곳의 작업으로 상당히 혹사를 당했는지 천장화를 그리느라 허리가 굽고 목과 눈에 병을 얻었다. 과연 불세출의 두 예술가를 희생시켜 명작을 탄생시킨 율리우스2세 교황은 천국으로 갔을까? 궁금하다.



**방문시점은 2016년 5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