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신랑 투고...)


 폼페이는 이탈리아 여행중에 조제가 특히 가고 싶어 했던곳으로 절대로 일정에서 뺄 수 없는 장소였다. 나폴리 투숙 2일째에 폼페이를 갈 수 있었는데 다행히 날씨도 아주 좋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폼페이로 가는방법은 버스나 사철(Circumvesuviana), 국철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래저래 검색해본 결과 사철이 가장 싸고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서 우리는 사철을 이용했다. 사철의 경우 폼페이(Pompei)역이 아니라 반드시 Pompei Scavi Villa dei Misteri역에서 하차하도록 하자. 폼페이역은 유적이 아니라 현존하는 시가지로써의 폼페이로 가기때문에 폼페이역에서 내리면 유적까지 접근이 쉽지 않다. 캄파니아 지역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폼페이라고 하면 폼페이 유적보다는 폼페이 시가지로 받아들인다. 국철의 경우 폼페이역에서 내려서 10여분을 걸어가야 유적지에 도착하는데 이때는Pompei Scavi Villa dei Misteri역의 반대편에 있는 원형경기장쪽 출입구를 이용하게 된다. 참고로 Scavi는 발굴하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폼페이와 나폴리의 중간정도의 어느역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여섯명정도의 무리가 악기와 스피커를 들고 열차에 난입. 갑자기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고, 10살도 안되어보이는 남자아이는 모자를 들고 돈을 구걸하고 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런걸로 돈 뜯기는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눈도 안마주쳤다. 우리나라에도 열차에서 소소하게 구걸하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있지만, 백주대낮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요란하게, 그것도 어린이를 동원하여 열차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구걸을 하고 있다니… 이것이 정말 G7의 일원인 이탈리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어 충격을 받았다.



 어쨋듯 무탈하게 폼페이 유적에 도착. 아르떼카드를 제시하고 입장권을 받았다.


 다들 알다시피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멸망하여 도시는 화산재 속에서 천년이상을 잠들어 있다가 발굴되었다. 베수비오 화산은 나폴리에서도 잘 보이는 현역 활화산이다. 폼페이외에도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 스타비아에 (Stabiae) , 오플론티스와(Oplontis)같은 도시들도 폼페이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 환락의 도시로 문헌속에만 존재하던 폼페이 유적은 18세기에 우물 작업중이던 인부의 우연한 발견으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폼페이는 엄청난 두께로 쌓여 있던 화산재 덕분에 뭍혀있던 세월에 비해 상당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 지붕과 벽들은 화산재의 무게로 인해 대부분 무너졌다. 복원과 발굴이 여전히 활발히 진행중인 현장이지만 상당부분이 일반에 공개되어 있어서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입구에서는 큰 짐을 무료로 맡길 수 있고 지도를 얻을 수 있다. 지도는 반드시 받아가도록 하자.

 폼페이 유적은 과거 수 만명이 살았던 광대한 도시 유적이다. 구석구석 다 보기는 힘든 곳이니 지도를 보고 어느정도 목표와 동선을 정하고 움직일 것을 권한다. 또 햇빛을 피할 곳도 별로 없고 유적안에 휴게장소와 음료수를 살 곳도 거의 없으니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경우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자.



 폼페이를 들어가는 관문인 옛 항구와 연결된 출입문인 Porta Mairna. 출입문이름에서도 느껴지듯 폼페이는 항구도시였다. 지진으로인한 지각변동으로 지금은 해안에서 2km 떨어져있지만 로마시대에는 폼페이 성문에서 500미터 앞이 바다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문과 마차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구분되어 있다.




 유적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잘 포장된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마차길과 인도가 구분되어 있고 과속방지턱 같은것도 있다. 무려 2천여년전에 이렇게 도로가 잘 정비되어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도로를 따라 걸어들어가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난것은 바실리카(Basilca). 바실리카는 로마시대에 집회나 재판, 회담 등을 주최하던 공공건물로 추정된다. 폼페이에 남아 있는 바실리카는 기원전 2세기중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로마시대 바실리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실리카의 옆에는 포로(foro)가 있다. 포로는 폼페이 최대의 광장으로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은 기능을 가진 도시전체의 중심지였다. 바실리카와 신전, 의회, 시청등이 포로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폼페이 포럼 북쪽에 있는 것은 쥬피터 신전(Tempio di Giove).

 쥬피터(유피테르)는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와 동격이다. 기원전2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원래 이곳에 있던 제우스, 헤라, 미네르바의 신상은 모두 나폴리의 국립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전뒤로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화산이다.



 포로의 서쪽편에는 아폴로신전(Santuario di Apollo)이 있다. (로마의 아폴로=그리스의 아폴론)

 아폴로신전에서는 여러가지 도기들과 조각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아폴론과 다이아나의 흉상은 모조품이다.





 포로를 지나 조금 전진하면 곡물창고(Granai del Foro)가 보인다. 현재 곡물창고는 유물보관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화산폭발로 사망한 폼페이 사람들의 Body Cast들도 보관되어 있다. 캐스트라는 의미 그대로 석고로 사람의 형태를 본 뜬 것이지, 시체 그 자체는 아니다.

 사람들의 시체,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폼페이에서 어떻게 사람들의 형태를 발견하고 복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자.

http://news.ebs.co.kr/ebsnews/allView/10463565/N



 폼페이 유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들중 하나가 바로 목욕탕이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것도 그렇고, 무려 2천년전에 이러한 시설이 있었다는것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잘 만들어졌기때문이다. 폼페이에는 중앙목욕탕, 공회장목욕탕(Terme del Foro), 스타비아 목욕장(Terme Stabiane)3 개의 주요 목욕탕이 있다.



 공회장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 냉탕과 온탕의 구분이 있고 사우나 시설도 있었다.



 사진상 아래쪽에 보이는 텔라몬 조각들 사이사이의 빈 공간이 옷을 보관하는 곳인데 텔라몬들은 하나하나 모두 다른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자신의 옷을 보관한 장소를 햇갈리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을까?


 

 비는 막으면서도 증기는 배출하는 구조, 아치형 천정에 홈을 파서 천정에 맺힌 물방울이 사람에게 떨어지지 않고 홈의 결을 타고 흘러내리도록한 설계까지 당시의 수준높은 기술력과 이용자를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무려 대리석 욕조까지!



 목재로 만든 일반주택들은 화산재의 열기와 무게로 인해 붕괴되었으나, 콘크리트로 만든 목욕탕의 천장은 견뎠다. 스타비아 목욕탕은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좋다. 이곳에서는 온수관, 온수가마도 볼 수 있다. 체육시설, 도서관, 스낵바 같은것도 병설되어 있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찜질방의 원조격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스타비아 목욕탕은 나중에 지어진 공회장목욕탕과 비교하면 좀 더 투박하긴하다.


 동선이 겹친 일본인 관광객단체의 가이드 설명을 슬쩍슬쩍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옛날에 목욕시설이 이렇게까지 잘 정비되어있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참고로 폼페이가 도시로써 정비된 시기는 일본의 조몬시대(縄文時代)후기에 해당한다. 신석기시대정도의 원시문명인 조몬시대에 로마인들은 금속 수도관으로 물을 대고 대리석욕조에 사우나시설을 완비하고 있었다니 놀랄만도 하다.


 폼페이 유적에는 집터가 무수하게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집들이있다. 그중 몇개만 소개해 보겠다.



 공회장 목욕탕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비극 시인의 집(Casa del Poeta Tragico) 이 있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집에 시인이 살았기때문이 아니라 이집의 벽화에 그리스의 비극시인 작품이 프레스코화로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비극시인의 집이 유명한 것은 입구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화 때문이다. 유리때문에 사진이 잘 안나왔는데 개그림과 함께 개조심(Cave Canem)이라고 라틴어로 써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조심 경고문으로 알려져있다.



 파우노의 집 (Casa del Fauno).

 폼페이 유적에서 가장 부유한 집으로 보인다. 정원이 2개나 있고 규모가 상당히 크다. 파우노의 집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춤추는 파우노의 청동상이 발견되어서 라고 한다. 파우노는 반양반인의 신으로 목동들이 모시는 신이라고.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문관 (http://sweethome107.tistory.com/261) 에서본 알렉산더와 다리우스의 모자이크도 이집입구에서 발견된 것이다.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것이 원본이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베티의집 (Casa dei Vettii).

  약 2000년전 당시의 주인의 명패가 남아있어서 그 이름을 따서 베티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울루스 베티우스 콘비바, 아울루스 베티우스 레스티투투스주 주인이었다. 크고 호화롭고 건물 내부 외부 모두 보존상태가 좋은 건물이다. 마굿간, 하인들의 거처, 화장실, 부엌까지 다양한 구조물을 볼 수 있어서 당시의 부유층의 생활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참고가 되는 곳이다. 또한 베티의 집에는19금의 적나라한 벽화들이 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그림이나 조각들이 부적역할을 했다고 한다.



 비너스의 집(Casa della Venere in Conchiglia).

 이곳도 상당히 부유한 사람의 집이었던것 같은데 고급스런 정원의 벽에 비너스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집 자체도 물론 그렇지만 기원전 1세기에 이러한 작품이 만들어졌다는것이 매우 놀랍다.






 그 외에도 일반인들의 집, 술집, 식당의 흔적들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홍등가의 흔적도 있는데 이곳에는 에로틱한 벽화가 많이 있기 때문에 아이를 동반한 관람객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대극장 (Teatro Grande).

 약 5천명을 수용할수 있는 대형극장. 움푹 파여있는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들어진 극장이다.

 대극장 바로 옆에는 소극장(Teatro Piccolo)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대극장보다 보존상태가 좋다. 극장전체에 천막을 둘러서 마치 실내극장처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유적답게 원형경기장 (Anfiteatro di Pompei)도 발견되었다. 약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한다. 당시의 폼페이 인구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열리는 빅이벤트에는 거의 모든 시민들이 관람을 하러 왔던것일까? 이 경기장은 기원전 1세기의 건축물로, 로마의 콜로세움보다도 오래된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곳들 외에도 크고작은 신전들과 조각들, 전시물들이 많이 있다. 공중화장실, 분수, 약국, 빵집의 흔적…이 모든것들이 복원이 되어서 로마시대의 도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발굴하고 복원한 폼페이 유적이 다시금 화산재에 덮히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 방문시점은 2016년 5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