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신랑 투고…)


 포르투갈인들은 명나라 시대때부터 마카오에 자리를 트고 명 조정에 비용을 지불하여 섬을 임대해왔다.

 청나라 시대에 들어서 중국이 아편전쟁에 패배하며 국운이 기울자 서구 열강들은 중국에 불평등 조약을 강요하며 이권을 챙기게 되었다. 포르투갈도 이에 편승해 마카오를 단순한 임대 자치령이 아닌 식민지령으로 지배하게 되었는데 원래 자신들의 임대지역이었던 마카오 반도뿐 아니라 무인도인 타이파와 콜로안까지 점령지역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수 백년을 포르투갈의 영향아래 있었던 마카오인 만큼 중국어와 포르투갈어가 공식 언어로 지정되어있다. 그러나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어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고 일반적으로는 광동어가 사용된다 (약 60만정도 되는 마카오 인구의 90%가 중국인).



 물론 포르투갈이 남긴 유적이나 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마카오와 중국의 독특한 융합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마카오 역사지구(澳門歷史城區)에 위치한 20개 이상의 건축물과 광장들을 묶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세인트폴 대성당 유적(大三巴牌坊)이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였지만 1835년에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성당 정면의 석조 외벽만 남아있다.

유적 뒷편 지하에는 천주교예술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발굴된 성물과 성화를 전시하고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남아있는 외벽만으로도 고풍스러운 건축과 정교한 조각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 마카오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모국 포르투갈에서 멀리 떨어진 마카오에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지은 것을 보면 포르투갈 사람들의 신앙심이 상당히 독실했거나 기독교 전파를 위한 신념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다. 





 엄청난 인파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바로 근처에는 몬테 요새(Fortaleza do Monte)가 자리하고 있다. 몬테(monte)는 포르투갈어로 산을 뜻한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산위에 있는 요새라서 계단을 좀 올라가야 한다. 포르투갈이 네덜란드, 영국등의 열강으로 부터 점령지를 지키기 위해 1626년에 완공했다.





 마카오 전역을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인 만큼 시야가 트여있고 전망이 좋다.

 마카오의 시가지와 낙후된 지역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요새안에는 박물관도 있다.




 몬테요새 안에는 수십문의 대포가 배치되어있다.

 명청교체기에 네덜란드 군대가 마카오를 침공해서 함락시킬뻔 했다. 마카오를 침공한 네덜란드의 병력은 포르투갈 주둔군의 6배로 숫적우세를 가지고 있었는데 몬테요새에서 쏜 포탄이 네덜란드의 화약고에 명중하자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고 착각한 네덜란드인들이 도망갔다는 얘기가 있다.



 요새를 내려와서..

 세인트 폴 성당 유적과 몬테요새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예수회 기념광장이라는 작은 광장이 있다. 이곳에는 중국 소녀가 포르투갈 청년에게 연꽃 봉우리를 건네는 동상이 있다. 이것은 포르투갈과 중국의 화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연꽃은 마카오의 상징이기도 하다.




 설렁설렁 근처를 배회하다가 Boa Mesa라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중국요리는 실컷 먹었고, 기왕 마카오에 온 김에 포르투갈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다. 세나도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골목에 위치한 가게였다. 가게이름인 Boa Mesa는 Good table 이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라고 한다.


 찾기 쉽지않은 위치에 있는 가게이고 조금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몇몇 있었다. 식사도중에 점점 손님이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거의 만석이 되었다. 손님은 서양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마카오 로컬 가족으로 보이는 손님도 있었다. 음식점을 서양적으로 구분하자면 이곳은 레스토랑보다는 Tavern에 가까운 느낌이다. 캐주얼하고 부담없는 분위기. 우리테이블을 담당한 점원은 백인이었는데 상당히 위트있고 친절했다. 영어 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식전 빵에 올리브, 버터가 함께 서빙되고…






 우리는 문어 샐러드, 오리고기가 들어간 포르투갈식 볶음밥을 시켰다. 둘 다 맛있었고 특히 볶음밥은 양이 상당히 많았다.

 참고로 임산부가 오리고기를 먹으면 태아에 좋지않다는 미신이 있는데 이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임산부에게 매우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포르투갈 요리에 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라 보아메사의 음식이 얼마나 오리지널 포르투갈 요리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주인장이 포르투갈 사람이라고 하니 아마 포르투갈 본토의 요리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하고 상상 할 뿐.

 마실것 포함해서 4만원이 좀 덜되는 가격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양을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세나도 광장 주위에 있는 장소들을 먼저 둘러보고나서 세나도 광장을 기점으로 아마사원을 향해서 움직일 계획으로..



이곳은 로우 카우 맨션 (盧家大屋).

 19세기말 부유한 사업가였던 노(盧=로우)씨 가족이 거주하던 집이라고 한다. 세나도 광장과 대성당 광장사이에 이러한 전형적인 중국스타일의 집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엄연히 말하면 마카오는 중국이므로 유럽풍 건물들이 이색적이어야 하는게 맞는거겠지만. ‘시관’이라는 청나라 후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ㅁ자 구조로 가운데 부분이 뚫려있어서 이쪽으로 채광이 되고 있다.






 겉보기엔 그냥 그렇지만 집 곳곳에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들이 눈에 띈다.

 이집을 지은 광저우 출신의 노화소라는 작자는 아편, 도박, 사채 등 어둠의 비지니스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고 하는데 결국 법적 제재가 가해지고 빚을 지게되자 자살을 했다고 한다. 노화소의 죽음으로부터 100년의 시간이 흘러 도박의 도시로 화려하게 부활한 마카오에는 지금도 노화소와 같은 삶과 죽음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재현되고 있겠지..




 장소를 옮겨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삼거리 회관 (三街會館) 또는 콴 타이 사원 (關帝廟=관제묘)라고 불리는 곳이다. 원래는 상인들의 회의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관제묘니까 물론 관우가 모셔져있다. 관제묘는 중국인들이 모여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하나씩은 있는듯하다.

 세나도광장에서 고작 한 블럭만 이동하면 성 도밍고스 시장이라는 중국식 시장이 있는데 그곳의 삼거리끝에 위치하고 있다. 유럽풍 건물이 넘쳐나는 세나도 광장에서 이 작은 사원이 이곳은 중국이다! 하고 외치고 있는듯 하다.





 노란색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 건물은 성 도미니크 성당(玫瑰聖母堂). 도미니크회 사제들이 1587년에 지었다고 하니 상당히 유서깊은 성당이다. 역사를 놓고 보자면 세나도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서양식 건물들중에서 제일 형님뻘이다.


 다음은 세나도 광장을 찍고 아마사원을 향해서 걸어갈 차례다.



** 방문시점은 2016년 12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