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이사하면서 옮긴 글 입니다. 원글은 2014년7월에 작성되었습니다. 최신정보가 아님에 유의해 주세요.**



# 시기리야(Sigiriya)

스리랑카에 온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이 시기리야 인듯 싶다

난공불락, 천공의 성이라 불리기도 하는 시기리야 록이 있는 이곳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기리야 또한 아누라다푸라와 함께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지만 시기리야의 첫 만남은 아누라다푸라의 City Resort 덕분에 과히 쉽지만은 않았다

숙소예약이 원만히 진행되었다 생각했지만 취소가 되었다는 소식, 연락은 했지만 무책임한 발언뿐인 City Resort 

 

다시 이쪽 저쪽 전화해서 해결할려고 했다면 해결 할 수 있었지만 더이상 City Resort와 계속 엮인다면 여행 내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이런 City~ 연발하며 새로운 숙소를 찾기로 했다

 


 

카페로 들어가 19금의 언행과 함께 분노의 검색을 하고 있지만 와이파이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급 좌절 후

카페 주인의 툭툭을 타고 총 다섯군데의 숙소를 직접 찾아가 보았다

 

 

 

Sigiriya Rest House

 

가격은 6800루피(55000원)

스리랑카의 평균 숙박 가격에 비해선 좀 비싼편이다

넓은 로비는 맘에 들지만 청결면이나 시설면에서는 오히려 주변 게스트하우스가 더 나을 듯 하다

와이파이가 되긴 하지만 접속속도가 너무나 느리다

위치는 시기리야 록 까지 걸어서 5~10분 거리 

 

자고 일어나 짐 챙길때 찍은 사진이니 너저분해도 이해 바람

 

 




# 시기리야 록(Sigiriya Rock)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뽑히고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시기리야 록

높이는 해발 370미터로 그렇게 높다고 생각되어 지진 않지만 

가파른 경사길에 박혀있는 계단을 걷다보면 1미터가 1킬로처럼 길게 느껴진다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든 것 조차 미스테리가 된 이 성을 지었을까?

 

5세기 후반의 왕자였던 카샤파의 어머니는 평민 출신이고 이복동생인 모갈란의 어머니는 왕족 출신이였다

출생의 컴플렉스를 가진 카샤파 왕자는 결국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길 두려움에 아버지 다투세나 왕을 강금한 후 왕위에 올랐다

카샤파왕은 다투세나 왕에게 보물까지 요구했으나 끝내 숨겨진 보물에 대해 말하지 않은 부왕을 살해하고 말았다

이때 동생 모갈란은 인도로 망명을 했고 그 동생의 보복을 두려워한 카샤파왕이 7년동안 시기리야 바위산에 왕궁을 건설했다

언제 동생이 돌아와 자신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지만 그 후 4년 뒤 인도에서 모갈란 왕자가 군대를 이끌고 온 전투에서 패한 후 스스로 목을 베어 자살했다

 

넉넉잡아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며 정오에는 뜨거운 햇살에 힘드니 아침 일찍 가는걸 추천

   

시기리야 록을 둘러 싸고 있는 황토길과 아름다운 해자

 ​

 

# 시기리야 록 입장료

 

달러 : 30달러

루피 : 3900루피 

이곳도 입장권을 끊으면 DVD는 부록



우뚝 솟아 있는 저 웅장한 바위가 바로 시기리야 록

 

이제 터만 남겨진 수로시설을 갖춘 정원

 

본격적으로 시기리야 록으로 들어가는 계단이다

정상까지는 총 1200개의 계단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는 더 많은 계단을 오르는 느낌

 

좁고 가파른 계단

 

 

아직 3분의 1도 못와서 숨차 있는 조제와 달리 애기까지 안고 올라온 스리랑카 아주머니

엄마들은 역시나 강하다

 

 

# 절벽에 그려진 미인도

 

영국인 탐험가가 우연히 바위산을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이 벽화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 벽화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원래는 총 500명의 미인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18명만이 남은 프레스코화 벽화


아찔한 철제 난간..

두려움에 떠는 조제 얼굴은 흉하므로...


 



미인도를 보러 가기 위해선 빙글 빙글 철제 수직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두개의 계단은 한곳은 올라가는 곳 또 한곳은 내려가는곳​


 

줄을 붙잡아 가며 절벽에 그려진 미인도 감상


옷을 입은 미인이 시녀, 가슴을 드러낸 미인이 귀족이라 한다



허리 아래가 그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구름속에 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압사라(천상의 요정)를 표현한 거라 한다

500명의 미인으로 가득했던 벽화는 어떤 모습이였을까..


훼손되어진 미인도들​ 

 

 

# 거울 벽

 

빙글빙글한 철제 수직 계단을 내려와 루트대로 걷다보면 거울 벽이 나온다

달걀 흰자와 꿀로 반죽한 석회를 칠해 광을 내면 은은하게 반짝거리며

햇볕을 받으면 그 모습이 더욱 빛나 거울처럼 얼굴도 비춰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다큐에서는 적이 거울에 비쳐 침입을 막는 용도로 쓰였다는 말도 있다


 

시기리야 록 중턱에서 내려다 본 정원

 

 

거울 벽을 지나 사자 입구로 가는 이 구간이 가장 무섭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탓에 바람도 많이 불고 밑에는 낭떠러지

평소 놀이기구도 잘 못 타는 조제는 정말 다리가 후덜거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 라이온스 테라스

 

가장 후덜거리던 구간을 지나면 평지가 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정상이 아니라 정상입구

 

시기리야는 신할리어로 사자바위를 뜻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입구 양옆으로 사자 발톱의 조각들이 있다

원래는 몸통과 머리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훼손되어진 상태

사자 발 사이의 계단을 올라가면 사자 입으로 연결되어 졌다고 하는데

상상만으로도 그 웅장함이 느껴진다

 

사자 발톱 사이의 입구가 좁은 이유는 적의 침입을 두려워 한 카샤파왕이

많은 적들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시기리야 록을 올라오는 중간중간 카샤파왕의 그 두려운 마음이 절실히 느껴진다

다시 봐도 후덜거리게 만드는 지그재그 계단

이 경사면의 계단을 오르면 왕궁이 있는 정상이 나온다

 

 



드디어 왕궁에 도착

정상에 올라옴에 감격한 조제 신랑​

 


 

이때!! 운동화에 땀 흘리며 올라와 감격하고 있는 조제 부부 앞에 등장한 하이힐 서양 여자

그것도 원피스에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당신이란 여잔 어떤 여자??

 

 

시원한 바람에 몸을 식히고 주변의 멋진 경관이 넋을 빼고 바라보게 만든다

카샤파왕은 이 멋진 경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궁은 사라지고 이젠 터만 남은 이곳

  

정상에 있는 수영장

이곳의 물은 지상에서 공급되어 졌다고 하는데 그 방법도 수로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인력으로 물을 가지고 온건 아닌지.. 그랬다면 얼마나 고된 일이였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왕궁을 짖기 위해 목숨을 잃었을지..카샤파왕의 광기가 만들어낸 이곳이 흠칫 소름 돋기도 한다

 

카샤파왕은 이 대리석 의자에 앉아서 무희들의 춤을 감상했을 거라 한다

 


 


1500년의 오래된 흔적들 

 

4800여평 정도 되는 궁전안에서 홀로 왕좌의 앉아있는 카샤파왕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고 ​이 위에서 스리랑카를 바라보는 그는 행복했을까?

그의 행복보다 그와 함께 지내야 했던 많은 스리랑카인들은 행복했을까?

 

결국 11년만의 불안과 초초암을 안고 자결하고만 카샤파왕

모갈란왕은 아누라다푸라로 환궁했고 이곳은 승원으로 복귀되었다